1. 초오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복식사는 유행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의상이 과거의 의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 시대와 로마 시대의 의상들이 중세에 영향을 미쳤고,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의상에 대한 연구는 벽화나 미술관에 있는 그림 등을 통해 의상이 연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상의 시대인 현대와는 달리 19세기까지 사회나 문화를 알 수 있는 것은 문학작품일 수 있다. 문학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의상에 대해 잘 묘사되어 있다. 문학자들은 의상 연구가들처럼 전문적인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나 모자, 장신구에 대한 기록을 문학 작품을 통해 직, 간접적으로 역사를 알 수 있다.
중세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초오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의상의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이로써 문학 작품을 통한 의상 연구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중세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인 초오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중에 남성들을 중심으로 한 의상에 대한 묘사로 집중될 것이며 '캔터베리 이야기'서문에 나타나는 복식을 통해 금욕주의 신체의 영향에 따른 의복의 형태와 의상에 제작된 직물의 소재나 의상에 관련된 직업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캔터베리 이야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세의 영국 순례자들은 신앙심 고취와 병 치유의 기복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성인 토마스 베켓이 매장되어 있는 캔터베리를 순례하는 것이 사회관습이었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주교 토마스 베켓은, 1170년 헨리 2세의 측근인 4인의 기사에 의해서 살해된 후 승천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그 후 영국 순례객들은 캔터베리의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토마스 베켓의 무덤을 순례하게 되었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제프리 초오서(Geoffry Chaucer)가 14세기 말에 저술한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문학서로, 29명 순례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프리 초서는 "이 시기가 되면 순례를 하고픈 열망을 느끼고, 신심이 깊은 여행자들은 낯선 나라와 머나먼 성지를 찾아가고자 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캔터베리로 몰려들어, 그들이 병들어 고생할 때 도와준 거룩하고 복되며 성스러운 순교자를 찾는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런던교 남쪽 서더크의 타바 드 여관에 묵으면서, 29명의 순례객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자를 엮었다. "캔터베리 이야기"서문에는 순례자들의 계급이나 직업에 따른 생김새, 의상 등이 세밀하게 적혀 있다.
2.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타난 의상의 특징
1)중세 금욕주의의 상징인 의상의 형태
초오서가 서문에서 묘사한 인물들의 옷이나 모자나 장신구들을 통해, 중세시대에 육체를 경시하는 금욕주의 사상의 영향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캔터베리 이야기'서문의 기사 아들의 복장에 대해 "그는 붉은 옷, 흰꽃이 만발한 푸른 초원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망토는 짧았고, 소매는 길고도 넓은 옷이었다". 여기서 소매가 넓고 길다는 것은 인체를 가리는 기독교적인 금욕주의적 사상이 나타나 있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사를 따르는 사람들 역시 머리에 두건을 쓴 것을 보면, 머리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기독교의 신체 은폐의 사상이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캔터베리 이야기'에 바스에서 온 휼륭한 아주머니에 관해 "머리에는 드건을 두르고 그 위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자는 방패만큼 컸다. 커다란 엉덩이는 치마에 가려져 있었고, 신발 뒤꿈치에는 끝이 뾰족한 박차를 달고 있었다."(송병선, pp.37-38)는 것처럼 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네오플라토니즘의 금욕주의적 인체관이 의복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교회가 중심이 된 문화로, 수도사나 수녀들이 온몸을 가렸듯이, 그 시대의 남자나 여자들은 온몸을 가리거나 머리를 감추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함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에서 여성이 머리를 가릴 것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까지 하면서 중세시대 여성이 머리쓰개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이런 머리쓰개는 고딕 양식과 결부되면서 남성들이나 여성들의 머리까지 마치 고딕 양식의 성당을 연상시키듯 뾰족하면서도 길게 뻗은 모양을 갖추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영향으로 13세기 동안 머리를 윔플(wimple)이나 넥 클로드(neck cloth)나 고젯(gorget)을써서 머리카락을 다 감싸거나 부분적으로 감쌌다. 이때의 헤드 드레스가 변형이 오늘날 종교의식에서 착용되고 있다.
중세 영국에서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외출시 머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남자들이나 여자의 머리를 가리고 다녔다. 이처럼 기독교 사상이 생활 전반에 스며듦을 알 수 있다. 기사를 따라다니는 종자가 초록색 조끼와 두건을 둘렀다. 종교인인 수사나 탁발 수사도 그러하였으며, 수녀들은 머리에서부터 턱을 가린 모자인 윔플을, 여성들은 베일이나 후드를 착용하였다. 이 또한 중세의 기독교적 인체 은폐 사상의 의상임을 알 수가 있다. 십자군 전쟁 이후에는 동방과의 교역으로 인해 좀 더 화려해지긴 했으나, 남성들도 거의 신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음은 여성들과 마찬가지이다. 중세시대에는 신체를 꾸밈에 있어서 "고대 로마가 '드러냄'의 문화라면 중세는 '가림'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2)의상에 사용된 직물들
"캔터베리 이야기"에는 등장인물들의 의상 직물에 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직물은 옷을 만드는 재료로만 생각될 수 있으나, 복식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직물은, 직조의 일부로서 자수나 프린트된 형태로 응용되어, 동시대의 의상을 디자인했기 때문에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순례자들의 옷을 통해서 그 당시 유행했던 천의 소재들을 알 수가 있다. "기사의 복장은, 거친 면으로 짠 웃옷과 그물 무늬의 갑옷에서 흘러나온 녹으로 얼룩져 있었다."라고 묘사되어 있듯이 면이 천의 소재였음을 알 수 있다.
중세의 의복 제작에 이용된 직물들의 소재들은 사미트와 센달, 펄스, 카멜린, 이 삼 브루나, 몰레 스킨, 푸스디앙, 세르즈 등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뽕은 갑옷 속에 입는 누빔 속옷으로, 소재는 satin이라는 곱게 짠 울 등 화려한 직물로 만들어졌다. 서문에서 묘사된 기사의 웃옷의 직물로 fustian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 푸 스티안은 아마와 대마로 구성된 혼방직물이었다. 중세 영국 후기에 지뽕은, 초기의 갑옷 속에 입은 옷으로서 거친 직물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doublet로 점차 발전하여 상의가 짧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스터와 게르는 "역사적 의상"이라는 책을 통해, 중세 13세기나 14세기에 의복제작에 사용된 직물임을 알 수가 있다. 13세기와 14세기에는 의상을 위한 적절한 소재들이 더욱 증가하여 사용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색이나 녹색이나 적색의 사미트(samite), 현재의 실크와 비슷한 센달(cendal)과 파란 천 인 펄스(pers)나 낙타의 머리로 만든 천 카메린(cameline)과 염색 브라운 색의 이삼브룬(isambrun)과 리넨 소재인 모레 시킨(moleskin)이나 푸스틴(fustaine)은 면으로 만들어진 강한 소재와 울의 소재인 세르게가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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